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에리히 하르트만 (문단 편집) === 종전과 포로생활 ===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당시 JG52 사령관인 [[헤르만 그라프]]와 함께 미군에 항복하지만, 소련과 미국의 밀약에 의해 소련군에 부대 전체와 함께 인도되어 10년 동안 시베리아에서 유형생활을 하게 된다. 소련은 종전즈음에 '대전내내 동부전선에서 싸운 독일군 병사와 부대들은 설령 미군에 항복해도 자기네 포로'라는 협상을 한 상태였다. 이런 밀약을 인정하지 않은 사례도 꽤 많지만[* [[에리히 폰 만슈타인]]같은 사례가 대표적으로 소련에서 넘겨줄 것을 요구하였으나 영국과 미국이 거부했으며 전쟁범죄에 연루되었음에도 가벼운 처벌만을 받았다. 실질적인 수형기간이 2년 남짓으로(18년형 선고→2년 뒤 외부에 나옴→4년 뒤 완전히 석방) 비슷한 사례인 [[야마시타 도모유키]]가 사형을 선고받은 것에 비하면 처벌받은 것도 아닌 수준이다. 살려준 이유로는 만슈타인은 매우 유능했기에 소련과의 전쟁을 위해 살려둔것이 중론이다.], 이 때문에 동부전선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운 전쟁영웅들 중 초급 간부들, 특히 공군의 슈퍼 에이스들 상당수가 소련에 인도되어 고초를 치렀다. 에리히 하르트만도 전쟁포로로 상당히 고초를 치렀다고 한다. 소련군들이 하르트만을 [[소련 공산당|공산당]] 당원으로 돌리려고 하거나 여러가지로 소련에 협력하라고 시켰다. 그러나 전혀 말을 듣지 않고 독일을 위해 싸운것을 후회하지 않는다는 식의 발언을 해서 독방에도 자주 가고, 단식투쟁도 하는 등, 제대로 된 인간 대접은 못 받았다. 결국엔 전범 누명을 뒤집어쓰고[* 1997년에 [[러시아]] 정부가 에리히 하르트만의 전쟁범죄 기소는 위헌이었다고 인정했다.][* 독일 공군 전투기 조종사들은 막장이었던 육군과 달리 전쟁 범죄에는 거의 연관성이 없었다. 대부분 공중전이었으니. 그렇다고 전범 기록이 없는 것은 아니다. 폭격기 조종사들은 민간인들에게 무차별 폭격을 퍼부었고 전쟁 포로 사냥 파티에 공군 장교들이 참여한 기록도 적지 않다.] 전쟁포로캠프에 10년 하고도 6개월간 잡혀 있었다가 1955년에 석방되어 서독으로 돌아가 아내 우르슐라와 재회할 수 있었다. 하르트만은 전쟁 중 매일같이 아내 우르슐라에게 편지를 보냈다고 한다.[* 불행히도 1945년에 아들이 태어났는데 병으로 아들이 1948년에 죽는 바람에 한 번도 얼굴을 보지 못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